사진의 조용한 혁명: 듣는 것으로 보기
사진은 시각 언어라 불리고, 사진이 말하게 하라는 압박은 더 조용한 서사를 묻어 버린다. 카메라를 들고 듣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누구의 시선을 위한 것인가.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조급함 속에서, 우리는 더 조용하고 더 미묘한 서사를 놓칠 위험이 있다. 이 철학에 끌린다면 (그리고 서둘러 넘기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Come Get Your Honey 시리즈를 찬찬히 들여다보길 권한다. “더 많이 듣고, 더 적게 보기”라는 이 정신을 전하는 이미지들을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사진은 종종 시각 언어로 칭송된다. 하지만 강렬하고 보기 좋고 메시지로 가득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무게를 두다 보면, 당장 주목을 구하지 않는 더 조용한 순간들이 지닌 본래의 가치가 가려질 때가 있다. ‘완벽한’ 샷, 프레이밍, 표정을 좇는 일은 본의 아니게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폭을 좁힐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진이 말하게 하라’고 독려받지만,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들을 준비도 되어 있는가? 어떤 장면, 어떤 피사체, 어떤 순간이 전하려 하는 서사와 작은 디테일과 절제된 감정에 우리는 귀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 사진은 누구의 시선을 위한 것인가?
사진가로서 우리는 ‘보려는’ 충동을 내려놓고 ’듣는 일’을 들여놓을 수 있다. 대화에서처럼, 사진에서 듣는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카메라 앞의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깊이 이해하는 일이다. 시각적 순간이 지닌 모든 면에 열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받는 ‘LGBTQIA+ 난민’ 관련 Google 뉴스 알림을 생각해 보라. 어조가 단조로울 때가 많다. 그 이야기들은 예외 없이 어둡고 (또한 타당하며), 마치 그것이 유일한 현실인 양 내 주의를 끌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사진가로서 나에게는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자극적인 헤드라인 아래의 더 미묘한 서사에 귀 기울이는 일이 과제로 남는다.
전통적으로 찬사받는 미학에 맞지 않거나 분명한 메시지를 즉시 드러내지 않는 사진은, 자주 서두르는 세상에서는 무시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꺼이 ‘들으려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일 수도 있다.
우리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언제였는가?
이 생각을 처음 말로 풀어 본 것은 2021년 브래드퍼드의 Photobook Fair에서였다. 녹취록이 함께 실린 대화, 듣는 행위로서의 사진은 저널에서 읽을 수 있다.